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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요괴] 고려시대에 민간신앙으로 믿던 목신(木神)-거대한 무리 두두리(豆豆里)

by 크리스탈칼리네이 2025. 4. 18.

 

1. 개요: 나무신 두두리란 누구인가

두두리는 신라와 고려 시기에 걸쳐 경주 지역을 중심으로 민간에서 오랜 기간 숭배되었던 목신(木神), 즉 나무의 신입니다. ‘두두리’라는 이름은 순수 고유어로 보이며, 후대에는 ‘두두을(豆豆乙)’이라는 음차로도 표기되었습니다. 두두리는 단일 개체의 신령이라기보다는, 경주의 특정 지역(왕가수)과 밀접히 연관된 토속신적 존재로서, 공동체의 수호신이자 영묘(靈妙)를 주관하는 신령으로 기능했습니다.

비형랑과의 연관성, 신라왕조의 신당 건립, 고려시대 무신정권에까지 그 전승이 이어진 것을 보면, 단순한 민담이나 신화적 존재가 아니라 정치적, 종교적, 민속적 기능을 모두 갖춘 실질적 신앙체계의 중심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어원 및 명칭 분석

  • **‘두두리’**는 고유어 명칭으로, ‘두둘’에서 파생된 말로 추정됩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형태로 어원적 분석이 가능합니다.
    • 두둘(原형) → 두두리(지소형 접미사 ‘-이’) 형태
    • 또는 두두리(고전형) → 두둘(모음 탈락 후 중세어형) 가능성

이처럼 ‘두두리’는 고대 한국어에서 중세 한국어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형태가 변동된 대표적인 신앙어휘로,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시대별 언어 변천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한자로는 豆豆里 혹은 豆豆乙, 木郞(木의 사내), 木神 등으로 표기되며 이는 두두리를 목신, 즉 나무 정령으로 여겼음을 반영합니다.


3. 신앙적 전승과 숭배

3-1. 경주 왕가수의 제사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경주부 남쪽 10리에 위치한 **왕가수(王家藪)**라는 숲에서 두두리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숲은 왕가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신성한 장소로 여겨졌으며, 이곳에 자리 잡은 두두리는 왕실과 백성을 보호하는 정령으로 인식되었습니다.

3-2. 비형랑과의 연결

『삼국유사』에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비형랑 이래로 성대하게 섬겨왔다”는 기술이 있습니다. 이는 비형랑이 두두리 신앙의 창시자이거나, 그를 중심으로 숭배가 제도화되었음을 암시하는 문장입니다. 즉, 두두리는 도깨비와 귀신을 부리는 비형랑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신성한 동맹의 수호신적 존재라 볼 수 있습니다.


4. 역사 기록 속 두두리의 실존 가능성

4-1. 신라 선덕여왕대 전설

신라 선덕여왕 시대, 두두리 무리가 하룻밤 사이 연못을 메우고 영묘사(靈妙寺)를 창건했다는 전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두두리가 단순한 수호신이 아니라, 집단적이고 건설적 기능을 가진 토속 신앙의 실체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이야기입니다.

4-2. 고려 무신정권 시기 - 이의민과의 관계

고려사에서는 무신정권의 실세였던 **이의민(12세기 후반)**이 두두리를 극진히 숭배했다고 나옵니다. 이의민은 글도 읽지 못했지만, 무당을 믿고 집에 신당을 세운 후 두두리의 초상화를 그려 모심으로써, 두두리를 일종의 정치적 수호신처럼 여겼습니다. 그러나 두두리가 통곡하며 “하늘의 재앙이 너를 치러 온다”고 예언한 뒤, 이의민은 최충헌에 의해 피살되는 운명을 맞게 됩니다. 이 장면은 두두리가 단순한 자연신이 아니라, 운명과 정치적 예언을 전하는 신탁의 매개자로 기능했음을 보여줍니다.


5. 두두리의 성격과 기능

5-1. 집단적 존재로서의 ‘두두리’

1231년 몽골의 침공 당시, 경주에서는 "두두리 다섯이 적진에 싸우러 가 있다"는 신탁이 전해졌습니다. 이는 두두리가 개체가 아닌 다수의 정령, 혹은 하나의 신적 군단일 수 있음을 나타냅니다. 두두리는 하나의 신적 ‘군대’, ‘무리’, ‘집단 의식’을 상징하는 개념일 수도 있습니다.

5-2. 민속의식과 예언

두두리는 제사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특정 시기에는 예언과 경고의 존재로 기능했습니다. 특히 이의민 사례나 몽골 침공 당시 예언 사건을 보면, 두두리는 민속에서 단순히 복을 비는 존재가 아닌, 하늘과 인간 세계의 매개자적 위치를 가진 고등신령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6. 도깨비 기원설과의 연관성

민속학계 일부에서는 두두리를 도깨비의 원형으로 보는 견해도 존재합니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 두두리 역시 숲의 신령(자연신)이었으며, 특정 공간(왕가수)을 수호하는 존재였습니다.
  • ‘비형랑과의 관계’에서 유추하듯, 귀신과 도깨비를 부리는 능력과 연관이 있습니다.
  • 근대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는 두두리를 아예 ‘도깨비’로 형상화하여 ‘불’과 ‘방망이’ 등의 상징을 부여했습니다.

이러한 점은 도깨비가 본래 불교적 악귀나 서역 도래 정령이 아닌, 자연 속 정령 숭배에서 기원한 한국 고유의 존재임을 뒷받침합니다. 즉, 두두리는 도깨비의 원초적 이미지가 신격화되었던 전신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7. 조선 시대 이후의 소멸

조선 시대 이후 유교적 질서가 강화되면서, 불교 및 민간 신앙의 중심지였던 경주 지역 역시 전란(예: 여몽전쟁)과 사회 질서 재편을 거치며 급격히 쇠퇴했습니다. 이에 따라 두두리 신앙 역시 사라졌으며, 후대에 이를 복원하거나 명확히 기억하는 자료는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현존 문헌에서도 조선 후기에는 두두리 관련 제사, 사당, 민속의 흔적이 언급되지 않는 것을 보아, 17~18세기를 지나며 완전 소멸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8. 현대 대중문화 속 두두리

두두리는 현대에 다음과 같이 문화적 재해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 📺 <무인시대> : 역사 드라마에서 ‘두두을’이라는 이름으로 등장, 배우 전무송이 맡아 신비한 노인으로 묘사됨.
  • 📚 90년대 <소년조선일보> 연재 만화 : ‘호롱불에서 태어난 도깨비’라는 콘셉트로 등장, 원형과는 다소 다르게 해석.
  • 📺 뽀뽀뽀 애니메이션(2001) : 어린이 대상 캐릭터로 귀엽고 친근하게 재탄생.
  • 🎥 <구미호뎐 1938> : 요목화된 존재로 등장. 신적 존재가 요괴화되는 일반 설화 전개에 따른 창작 해석.
  • 📘 웹툰 <세계의 요괴> 시즌 2 : 자신을 요괴 취급하는 인간들에게 분노하는 신적 존재로 등장. 인간과의 관계 회복을 갈망하는 모습이 특징입니다.

이러한 사례는 두두리가 단순히 사라진 신앙의 유물로만 남지 않고, 창작의 영감과 문화 재해석의 소재로 부활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결론

두두리는 단순한 도깨비도, 한 마리의 요괴도 아닌 경주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고대 한국의 정령 숭배의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그는 민간 신앙과 정치 권력, 예언과 제사, 숲과 도시의 경계에 존재했던 다면적인 존재입니다. 그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신화와 민속, 그리고 창작 속에서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이러한 두두리에 대한 재조명은 도깨비와 자연신앙의 기원을 다시 해석하는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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