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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화-유래,역사편

[한국의 요괴] 자신의 딸이 악귀들에게 당하여 악귀들을 때려 잡기 위해 스스로 악귀사냥꾼이 된 두억시니

by 크리스탈칼리네이 2025.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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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gpt가 그려준 그림

두억시니 연구 보고서: 기원, 역사적 해석, 현대적 변용

서론

두억시니는 한국 민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동시에 종종 오해를 받는 존재입니다. 현대에 들어 한국의 전통적인 요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두억시니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의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본 보고서는 두억시니의 기원 설화, 역사적 해석, 그리고 현대 문화에서의 다양한 변용 양상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특히, 널리 알려진 고조선 의병장 '두억' 설화의 진위 여부, '설총요집'이라는 고서의 존재, 과거 민간에서의 용례, 민속학 연구에서의 재조명, 조선 후기 야담집 '기관'에서의 묘사, 도깨비와의 비교 분석, 그리고 현대 인터넷 문화에서의 재해석을 심층적으로 다룰 것입니다.


널리 알려진 기원 설화의 해체

 

'두억' 설화: 현재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널리 퍼져 있는 두억시니의 기원 설화는 고조선 시대에 '두억'이라는 용맹한 장수가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의 딸들이 악귀에게 죽임을 당하자, 두억은 쇠몽둥이를 들고 악귀들을 쫓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악귀와의 싸움에서 죽음을 맞이한 두억은 죽어서도 귀신이 되어 악귀들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맹세했고, 이후 온몸에 피칠갑을 한 뿔 달린 형상의 귀신, 즉 두억시니가 되어 악귀를 잡아먹었다고 전해집니다. 이 설화는 두억의 강인함, 딸들의 죽음, 복수를 위한 그의 맹세와 변신 등 극적인 요소를 담고 있어 현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또한, 이 이야기에는 두억이 한나라의 고조선 침략에 맞서 싸운 의병장이었으며, 그의 이야기가 고구려로 이어져 일본의 오니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 덧붙여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영웅 서사적 면모는 현대 사회에서 두억시니라는 존재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루리웹 유래설: 하지만 이러한 '두억' 설화의 출처를 추적한 결과, 이는 루리웹의 괴담 게시판에서 한 사용자가 창작한 이야기로 밝혀졌습니다. 해당 게시글은 현재 삭제되어 직접적인 확인은 어렵지만, 여러 정황 증거들이 이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역사 기록에서 '두억'이라는 고조선 의병장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으며, 해당 설화에서 언급된 '설총요집'이라는 고서는 실존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처럼 역사적 근거가 부족하고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유래했다는 점은 해당 설화가 현대에 창작된 허구의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설화가 널리 퍼진 것은 극적인 스토리텔링과 영웅적인 면모가 대중의 흥미를 끌었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일본 오니와의 연관성 주장: '두억' 설화가 고구려를 거쳐 일본의 오니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 역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두억시니와 오니 모두 뿔이 달리고 험상궂은 외모를 가진다는 점에서 외형적인 유사성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현대에 창작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두억' 설화를 근거로 오랫동안 일본에서 전해 내려온 오니의 기원을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한반도와 일본 열도 간의 문화 교류는 분명히 존재했지만, 특정한 현대 창작 설화가 다른 문화권의 오랜 전승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단정하기 위해서는 보다 확실한 역사적 증거가 필요합니다. 현재까지 제시된 정보만으로는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어렵습니다.


코파일럿이 그려준 그림

 

'설총요집'의 실체와 역사적 맥락

 

'설총요집'의 언급: 앞서 언급된 '두억' 설화는 그 출처로 신라 시대의 학자 설총이 저술했다고 알려진 '설총요집(薛聰要集)'이라는 고서를 제시합니다.  

 

'설총요집'의 부재: 하지만 여러 자료를 종합해 볼 때, '설총요집'은 설총의 저작물로 알려져 있지 않으며, 현재까지 전해지는 바도 없습니다. 설총의 대표적인 저작물로는 신문왕에게 간언하기 위해 꽃을 의인화하여 쓴 우화 소설인 '화왕계(花王戒)'가 '삼국사기' 설총열전에 기록되어 전해지며 , '동문선'에는 '풍왕서(諷王書)'라는 이름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감산사 아미타여래조상기 등의 기록이 남아있으나 , '설총요집'이라는 문집 형태의 저서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당시 동아시아 사회의 분위기를 고려할 때, 개인의 이름을 딴 문집을 발간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습니다. 일부 고서 경매 목록에서 '요집'이라는 명칭이 확인되기도 하지만 , 이는 특정 인물의 저작집이라기보다는 중요한 내용을 간추려 놓은 책을 의미하는 일반적인 용어일 가능성이 높으며, 설총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따라서 '설총요집'의 존재를 '두억' 설화의 역사적 근거로 삼기는 어렵습니다.  

 

설총의 역사적 업적: 설총은 신라 경덕왕 때 활동한 유학자로, 원효대사의 아들이며 강수, 최치원과 함께 신라의 3대 문장가로 꼽힙니다. 그는 이두 문자를 집대성하여 한문 교육이 어려웠던 신라인들이 우리말로 경전을 읽고 유학을 공부하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 유학 정신에 입각한 도덕 정치를 추구한 학자로서 신라 시대 유교 발전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업적은 사후에도 인정받아 고려 시대에 홍유후라는 시호가 추증되고 문묘에 배향되기도 했습니다. 설총의 실제 업적과 '화왕계'와 같은 그의 저작물의 성격을 고려할 때, 그가 '두억' 설화와 같은 민간 설화를 집대성한 '설총요집'을 저술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판단됩니다.  

 

민간 전승 속 두억시니의 의미와 용례

초기 해석: 과거 한국 민간에서 '두억시니'라는 용어는 단순히 귀신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귀신과 관련된 특정한 현상이나 성격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잠자는 동안 몸이 움직이지 않고 답답함을 느끼는 현상, 즉 '가위눌림'을 '두억시니가 괴롭혔다'고 표현하거나 , 성격이 포악하고 난폭한 사람을 '두억시니 같다'고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두억시니가 인간이 이해하거나 저항하기 어려운 부정적인 경험이나 공포스러운 존재를 상징했음을 보여줍니다. '두억시니'라는 이름 자체가 '머리를 짓누르는 귀신(頭抑神)'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 은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합니다.  

 

고통과 공포의 상징: 두억시니는 특히 고통, 그중에서도 머리 통증과 같은 신체적 고통이나 정신적인 불안감, 그리고 극심한 공포와 깊이 연관되어 사용되었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이나 두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사람들은 이를 두억시니의 작용으로 여기며 공포감을 느꼈습니다. 이는 당시 과학적인 설명이 부족했던 시대에 초자연적인 존재를 통해 부정적인 경험을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민간의 노력을 반영합니다. '두억시니'라는 단어는 단순히 괴물이나 악귀를 지칭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고통과 공포의 감정을 대변하는 역할을 수행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1980년대 이후 민속학 연구에서의 재조명

 

민속학 연구의 활성화: 1980년대 이후 한국 민속학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두억시니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전통 민간 신앙과 설화에 대한 학문적 탐구가 심도 있게 이루어졌으며, 그 과정에서 두억시니는 과거의 단순한 공포 대상으로서의 의미를 넘어, 한국 전통 문화 속에서 보다 복합적인 존재로 재조명되었습니다. 특히, 기존에 도깨비의 일종으로 여겨지던 두억시니를 도깨비와는 다른 독자적인 존재로 분류하고, 그 기원과 특징을 새롭게 해석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습니다.  

 

야차와의 연관성: 민속학 연구에서 두억시니는 불교의 야차(夜叉)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야차는 불교 설화에 등장하는 사납고 악한 귀신으로, 때로는 사람을 해치기도 하지만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맡기도 합니다. 두억시니 역시 난폭하고 사나운 성격을 가지며, 사람을 괴롭히거나 해치고 심지어 잡아먹는다는 전승이 있는 반면, 잘 달래면 재물을 가져다주거나 아이를 점지해 준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이러한 양면적인 속성은 야차의 특징과 유사하며, 일본의 오니 또한 야차의 일본식 변형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두억시니가 전통적으로 야차와 동일시되거나 그 영향을 강하게 받았음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두억시니를 '모질고 사나운 귀신의 일종'이자 '야차의 유의어'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도깨비와의 차별화: 1980년대 이후의 민속학 연구는 두억시니를 단순히 도깨비의 하위 분류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도깨비와는 구별되는 독자적인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전통 설화에서 도깨비는 인간과 친근하게 소통하거나 장난을 치는 등 비교적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는 반면, 두억시니는 훨씬 더 위협적이고 폭력적인 존재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부 전승에서는 두억시니를 도깨비 무리의 우두머리로 묘사하기도 하지만 , 이는 모든 도깨비가 두억시니의 지배를 받는다는 의미보다는 두억시니가 도깨비 중에서도 강력한 존재임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민속학 연구의 심화는 이처럼 두억시니와 도깨비의 미묘한 차이점을 밝혀내고, 한국 민간 신앙의 다층적인 면모를 이해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제미나이가 그려준 이미지
 
 

조선 후기 야담집 '기관'에 나타난 두억시니

 

'기관' (천예록) 속 두억시니 이야기: 조선 후기에 임방이 편찬한 야담집인 '기관(箕言)' 또는 '천예록(天倪錄)'에는 두억시니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느 양반 집안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어 큰 잔치가 벌어졌는데, 갑자기 더벅머리를 한 열댓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나타나 마루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이 누구 집 아이인지 물어도 대답하지 않고, 하인들을 시켜 내쫓으려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힘센 무인들을 시켜 몽둥이로 때려도 아이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사람들은 그 아이가 인간이 아님을 깨닫고 두려워하며 용서를 빌었고, 아이는 비웃으며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부터 그 집과 잔치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집에 무서운 전염병이 퍼졌고, 아이를 꾸짖거나 때리라고 했던 사람들은 머리가 깨져 죽었습니다. 잔치에 갔던 사람들 역시 모두 죽어 살아남은 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야기의 말미에는 세상 사람들이 그 아이를 '두억시니'라고 불렀지만 그 근거는 알 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도깨비와의 관계: '기관'에 묘사된 두억시니는 기존의 도깨비 이미지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일반적으로 도깨비는 인간과 장난을 치거나 재물을 가져다주는 등 비교적 친근한 존재로 그려지는 반면, '기관'의 두억시니는 압도적인 힘과 예측 불가능한 공포를 선사하는 존재로 나타납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두억시니는 다른 도깨비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묘사되지는 않지만, 그 강력한 힘과 인간에게 재앙을 내리는 능력은 일반적인 도깨비보다 훨씬 강력한 악귀의 이미지를 연상시킵니다. 일부 해석에서는 이러한 두억시니를 도깨비 무리의 우두머리로 보기도 하지만 , '기관'의 이야기만으로는 명확한 관계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이 야담은 두억시니가 인간의 힘으로는 대항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존재로서 큰 공포의 대상이었음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출처 : https://i.pinimg.com/736x/18/81/01/1881018a025010164f3dd132609a6c27.jpg

전통 설화 속 도깨비와 두억시니의 비교 분석

 

공통점: 전통 한국 설화에서 도깨비와 두억시니는 모두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초자연적인 존재, 즉 귀신(鬼神)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둘 다 때로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거나 불운을 가져다주기도 하며 , 현대에 와서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재해석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차이점: 가장 큰 차이점은 성격과 행동 양상에서 드러납니다. 도깨비는 장난기가 많고 때로는 인간을 돕기도 하는 등 비교적 변덕스럽고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는 반면, 두억시니는 일반적으로 사납고 악독하며 인간에게 공포와 고통을 주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도깨비는 방망이와 같은 도구를 사용하여 술법을 부리거나 인간과 내기를 즐기는 이야기가 많지만, 두억시니는 직접적인 물리적 폭력이나 초자연적인 재앙을 통해 인간을 위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두억시니는 불교의 야차와 강하게 연관되어 악귀의 이미지가 강조되는 반면 , 도깨비는 토착 신앙의 정령이나 자연 현상의 의인화된 존재로 여겨지는 경향이 강합니다.  

 

상징적 의미: 도깨비는 때로는 풍요와 행운을 가져다주는 복의 신으로 숭배되기도 하며, 인간의 욕망이나 어리석음을 반영하는 존재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반면, 두억시니는 주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극심한 고통과 공포, 그리고 불가항력적인 재앙을 상징하는 존재로 여겨집니다. '머리를 짓누르는 신'이라는 이름처럼 정신적인 고통이나 압박감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차이점은 도깨비와 두억시니가 한국 민간 신앙에서 각각 다른 역할과 의미를 지니고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출처 : https://i.pinimg.com/736x/6f/a8/2b/6fa82bb4f6ab99e99e790fb3ec62b577.jpg

도깨비와 두억시니 비교표


특징 도깨비 두억시니
성격/행동 장난기 많음, 변덕스러움, 인간과 상호작용 가능 사나움, 악독함, 인간에게 공포와 고통을 줌
외형 (전통적) 뿔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함 뿔이 있는 험상궂은 모습 (야차/오니와 유사)
관련성 토착 신앙, 자연 현상 의인화 불교 야차와 강한 연관성
상징적 의미 풍요, 행운, 인간의 욕망/어리석음 반영 극심한 고통, 공포, 불가항력적인 재앙, 정신적 압박
현대적 재해석 친근하고 코믹한 캐릭터로 등장하기도 함 주로 강력하고 위협적인 이미지로 등장
 
 
 

현대 인터넷 문화에서의 두억시니

 

다양한 재해석: 현대 인터넷 문화에서 두억시니는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되고 소비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무섭고 사나운 이미지뿐만 아니라, 새롭고 독특한 설정을 가진 캐릭터로 등장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웹 기반 콘텐츠: 웹툰에서는 두억시니가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신의 언어'에서는 스마트폰에 봉인된 귀여운 요괴로, '요괴난전'에서는 봉인에서 풀려난 강력한 존재로, '먹지마세요'에서는 폭력적인 하위 요괴로, '도깨비의 밤'에서는 타락한 존재로 그려집니다. 유튜브에서는 '요약왕 두억시니', '여행족 두억시니'와 같이 채널 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하며 , 웹소설 '내일이 없는 시한부 공주라서요'에서는 강력한 악역으로 등장합니다. 이러한 다양한 웹 기반 콘텐츠에서의 등장은 두억시니가 현대 대중문화 속에서 꾸준히 소비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게임에서의 활용: 온라인 게임 '거상'에서는 초보 몬스터로, '고스트X'에서는 강력한 병기로, '하스스톤'에서는 전설 카드의 한국어 명칭으로, '머털도사 2: 천년의 약속'에서는 몬스터로, '별이되어라!'에서는 행성 수호자로, '바람의나라: 연'과 '검은사막'에서는 도깨비의 지도자라는 설정으로 등장하는 등 , 다양한 게임에서 두억시니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두억시니가 한국적인 요괴로서 게임 콘텐츠에 매력적인 소재를 제공하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기타 매체: 애니메이션 '펭킹 라이킹'에서는 악당 캐릭터로, 판타지 소설 '눈물을 마시는 새/피를 마시는 새'에서는 독특한 종족으로, 인기 애니메이션 시리즈 '신비아파트'에서는 주요 귀신 중 하나로 등장하며 , 게임 '역전재판'에서는 농담 소재로 언급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매체에서의 등장은 두억시니가 특정 연령층이나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폭넓게 인지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한국 대표 요괴로서의 위상: 현대 인터넷 문화에서 두억시니는 전통적인 의미와는 다른 새로운 해석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에 등장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요괴 중 하나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비록 '두억' 설화의 역사적 진위 여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두억시니라는 존재 자체는 한국 민속 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현대 사회에서도 그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출처 : https://i.pinimg.com/736x/78/a8/41/78a841a56d4eb4e26f6df74bca40369d.jpg

결론

 

본 보고서를 통해 두억시니에 대한 다양한 측면을 살펴보았습니다. 널리 알려진 고조선 의병장 '두억' 설화는 루리웹 커뮤니티에서 유래한 현대의 창작물일 가능성이 높으며, 해당 설화에서 언급된 '설총요집'이라는 고서는 실존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과거 한국 민간에서 두억시니는 주로 고통과 공포를 상징하는 존재로 인식되었으며, 1980년대 이후 민속학 연구에서는 불교의 야차와의 연관성이 강조되고 도깨비와 차별화되었습니다. 조선 후기 야담집 '기관'에서는 강력하고 공포스러운 존재로 묘사되었으며, 전통 설화에서 도깨비와는 성격, 상징적 의미 등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현대 인터넷 문화에서는 다양한 모습으로 재해석되어 소비되며, 한국을 대표하는 요괴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하고 있습니다.

두억시니는 시대의 흐름과 함께 그 의미와 해석이 변화해 온 흥미로운 존재입니다. 비록 일부 기원 설화는 허구일지라도, 두억시니가 한국인의 상상력 속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아 다양한 형태로 변모해 온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두억시니는 현대 문화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으며 지속적으로 재창조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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