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요괴] 여러 다층적인 상징체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유성신(劉成神)
1. 유성신(劉成神)의 개요
유성신(劉成神)은 중국 송나라 시기의 설화집 『태평광기(太平廣記)』에 수록된 천호(天狐) 중 하나로, 대륙에서 패악을 부리다 신라로 추방되어 신으로 숭배받게 된 존재입니다. 그의 이름은 조선 후기 시문집 『희암집(希菴集)』에도 등장하며, 유성신은 단순한 요괴가 아니라 종교적, 정치적 상징성이 결합된 존재로 묘사됩니다.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그는 인간의 삶을 농락하며 종교적 광기를 일으키고, 결국 도교의 힘으로 제압되어 한반도로 추방된 천상의 요호(妖狐)로 자리매김합니다.
2. 유성신 설화의 전승 내용
2.1 현령의 출가와 보살의 환영
당나라 시절 어느 현령이 갑자기 "출가하고 싶다"며 불경을 외우기 시작합니다. 가족들이 말려도 듣지 않고, 오색 구름 속에서 사자 위에 앉은 보살이 나타나 그에게 수행을 격려하며 떠납니다. 이후 현령은 며칠 동안 단식을 하며 수행에 몰두해 생명이 위태로워질 정도로 정신을 잃습니다.
2.2 도사 나공원의 등장과 첫 번째 퇴마
마침 촉 땅에서 도성으로 향하던 도사 나공원이 현령의 집에 들렀고, 그 아들을 통해 이 일이 여우의 주술임을 간파합니다. 나공원은 부적을 써주고, 그 부적을 우물에 넣고 아버지에게 삼키게 함으로써 주술을 풀고 현령은 제정신을 찾습니다.
2.3 유성과의 재회와 딸의 결혼
몇 년 후 관직을 그만둔 현령은 뽕나무 숲에서 기병의 호위를 받는 귀인을 만납니다. 그는 유성이라는 이름의 남자였고, 막대한 재산으로 현령의 딸과 결혼을 성사시킵니다. 딸까지 여우에게 빼앗긴 현령은 다시 좌절하게 됩니다.
2.4 나공원의 두 번째 퇴마와 추방
현령의 아들은 또 다시 나공원을 불러 유성을 퇴치합니다. 하지만 나공원은 유성이 단순한 요호가 아니라 천호(天狐)이기에 죽일 수는 없다고 말하며, 대신 동쪽 끝으로 추방해야 한다고 결론짓습니다. 이로써 유성은 신라로 쫓겨나게 됩니다.
2.5 신라에서의 숭배
이후 유성은 신라 땅에서 유성신으로 숭배받게 되며, 신라 민간신앙 혹은 불교적 숭배 대상의 일종으로 흡수됩니다.
3. 상징과 해석
3.1 불교와 도교의 대립 구도
유성신 설화는 단순한 여우 퇴치 이야기가 아니라 당나라 시대 불교와 도교의 대립을 상징하는 구도로 해석됩니다. 유성은 스스로를 보살로 위장하여 불교적 상징으로 등장하지만, 도교의 도사 나공원에게 패배함으로써 당나라 시대 도교의 우위와 불교의 쇠퇴를 반영합니다.
3.2 종교적 패러디와 풍자
유성신은 불교를 모방한 사이비 존재로 묘사됩니다. 이 점은 당시 종교 내부의 타락, 혹은 도교 관점에서 본 불교의 과잉 전파를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구조로 보입니다. 특히 유성이 보살로 등장해 인간을 홀리는 장면은 불교의 외형은 차용하되, 실제 내용은 비도덕적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3.3 불교문화 수출의 은유
유성이 신라로 추방되어 숭배받는 설정은 당시 당나라 문화, 특히 불교문화가 동아시아에 퍼져나가는 역사적 상황과 연결됩니다. 유성신을 불교 전도자로 해석한다면, 이는 당에서 신라로 이어지는 불교문화의 전파를 은유한 이야기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유성은 악한 존재이면서도 신적인 주술과 위엄을 지닌 존재로 등장하며, 이는 신라에서 외래 신앙이 어떻게 융합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4. 유사한 여우 신앙 및 신라 관련 기록
4.1 길달의 기록
신라의 승려 길달은 여우로 둔갑한 존재로 여겨지며, 흥륜사의 길달문을 세운 인물로 등장합니다. 그 또한 여성과 연관되어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는 유성신의 이야기와 비슷한 전개를 보입니다.
4.2 흑여우와 원광 법사
또 다른 기록에서는 신라의 원광 법사가 흑여우의 도움을 받아 중국으로 유학을 가 불교를 익히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 흑여우는 유성처럼 신통력을 지닌 존재로, 불교 수행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는 여우가 단순한 요괴가 아닌 초자연적 조력자로 인식되던 측면을 보여줍니다.
4.3 신라의 불교적 수용 구조
신라는 당과 달리 불교를 국교 수준으로 받아들였으며, 불교의 호국성과 신비성은 각종 요괴, 토속신들과 쉽게 융합되었습니다. 유성신 같은 외래 여우신도 불교적 해석을 거쳐 민간에서 신격화되었으며, 이는 당시 신라의 신앙 통합적 성격을 반영하는 사례입니다.
5. 유성신의 문화사적 의의
유성신은 단순한 여우 요괴로 보기에 어려운 다층적인 상징체입니다. 그는 당나라 불교의 위선, 도교의 우위, 문화 교류, 종교 융합의 과정을 모두 품고 있으며, 그 존재 자체가 동아시아 신앙의 흐름과 정치적 배경을 함께 드러내는 하나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의 추방 이후 신라에서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는 설정은 중국 중심에서 주변부로의 신앙 흐름과 그 재해석 과정을 잘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입니다. 유성신 설화는 단순히 요괴 이야기 그 이상으로, 동아시아 종교사와 민간신앙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