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요괴] 늙은 호랑이이며 머리에 흰 두건을 썼으며 무척이나 똑똑한 백포건호(白布巾虎)
1. 개요
백포건호(白布巾虎)는 『용재총화(慵齋叢話)』와 『임하필기(林下筆記)』 등 한국의 고전 문헌에 기록된 호랑이 요괴입니다. 문자 그대로 '흰 두건을 쓴 호랑이'를 의미하며, 보통 늙고 지혜로운 호랑이로 묘사됩니다. 한국 민속에서 호랑이는 신성한 존재이면서도 위협적인 존재로 자주 등장하며, 백포건호는 이중에서도 특별히 인간으로 둔갑하여 사회적 위치를 가진 존재로 등장합니다. 주로 늙은 중이나 노인의 형태로 사람들에게 나타나며, 때로는 무리를 통솔하는 우두머리 역할을 합니다.
2. 이름과 유래
'백포건호'라는 이름에서 '백포(白布)'는 흰 두건을 의미하고 '건호(巾虎)'는 두건을 쓴 호랑이를 뜻합니다. 전통적으로 호랑이는 권위와 힘, 지혜의 상징으로 여겨졌으며, 특히 흰색 두건은 지혜로움과 높은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문헌에서 묘사된 바에 따르면, 늙고 지혜로운 호랑이가 인간 사회에 침투하여 지능적으로 행동하며, 때로는 인간과 협상을 하기도 합니다.
3. 전승의 배경
백포건호의 전승이 가장 유명하게 전해진 시기는 고려시대 강감찬 장군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당시 강감찬은 한양부의 판관으로 있었으며, 이 지역에서는 호랑이들이 자주 출몰하여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호랑이의 인간화된 모습을 통해 사회적 질서와 권위를 세우고, 인간의 지혜와 용맹을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4. 주요 전승 이야기
고려시대, 한양부의 판관으로 있던 강감찬은 호랑이들이 마을에 출몰하여 백성들을 괴롭히자 특별한 계책을 사용했습니다. 그는 아전을 불러 종이에 글을 써 부첩(府貼)을 만들고 북동 지역의 바위 위에 앉아 있는 흰 두건을 쓴 늙은 중을 찾아오도록 명령했습니다. 아전이 실제로 그곳으로 가니, 강감찬의 말대로 흰 두건을 쓴 늙은 중이 앉아 있었으며, 중은 부첩을 보고 군말 없이 강감찬을 찾아와 머리를 숙였습니다.
강감찬은 중에게 "5일 안에 무리를 이끌고 떠나지 않으면 활로 쏘아 죽일 것이다"라고 호통쳤습니다. 이를 지켜본 부윤은 강감찬의 행동을 비웃었지만, 강감찬은 늙은 중에게 본 모습으로 돌아갈 것을 명령했습니다. 그러자 중은 크게 울부짖으며 즉시 거대한 호랑이로 변하여 주변을 위협했고, 그 위엄에 부윤은 놀라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강감찬이 다시 변신을 멈추라고 명령하자, 호랑이는 다시 중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이튿날, 이 늙은 호랑이는 다른 십여 마리의 호랑이들을 이끌고 강을 건너 떠나갔으며, 그 이후 한양 지역에서 더 이상 호환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5. 상징과 해석
백포건호는 단순히 무섭고 위험한 존재로서의 호랑이가 아니라, 인간의 형태로 변장하여 사회적인 소통과 협상을 할 수 있는 존재로 등장합니다. 이는 민속적 관점에서 볼 때 호랑이의 다중적 이미지를 잘 보여줍니다. 호랑이는 인간에게 위협적이면서도 숭배의 대상이었으며, 이러한 상호작용은 인간과 자연, 인간 사회와 초자연적 존재 사이의 긴장과 조화를 상징합니다.
또한 강감찬이 늙은 호랑이를 다루는 방식은 인간의 지혜와 권위를 강조합니다. 인간의 지혜로 자연의 위협을 극복하고 질서를 바로잡는다는 점에서 이 전승은 도덕적,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6. 문화적 의미
백포건호 이야기는 호랑이를 신성하면서도 인간과 동등한 지혜를 가진 존재로 보는 한국 전통적 시각을 반영합니다. 고려시대라는 역사적 배경을 통해, 인간의 통제 아래 놓인 자연의 힘을 드러내는 동시에 인간이 지켜야 할 도덕적 권위와 책임감을 강조합니다.
한국의 호랑이 설화 중 백포건호 이야기는 특히 흥미로운 사례로, 호랑이가 인간과의 관계에서 복잡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이는 한국 민속 전반에 나타나는 호랑이의 다양한 모습 중 하나로서, 두려움과 존경, 갈등과 조화가 동시에 공존하는 관계를 묘사합니다.